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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수라의 본명은 정은숙인데요 63년생으로 올해 나이는 56세 입니다.

그녀는 80년대 중반 나미, 이선희와 같이 여성 트로이카로 불렸던 80년대를 상징하는 여자 가수 중 한명 이었습니다.



1963년 12월 13일 [음력 10월 28일] 서울특별시 출생.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4년,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1회 한국가요제에선 함중아 작곡의 '종소리'를 불러 관심상을 수상하면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주로 CM송이나 만화영화 주제가 등에선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성인이 된 후인 1982년에,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65cm의 키에 52키로 AB형으로 알려져있기도 하지요



그 후 1983년에, 앨범에 수록된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이 크게 관심을 끌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후에도 '도시의 거리'[1985], '난 너에겐'[1986], '환희'[1988] 등을 힛트시켜 80년대를 상징하는 여자 가수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정수라는 2005년 변진섭의 소개로 비즈니스가 장모 씨를 만나게 되었고 같은해인 2006년 결혼했습니다.

그녀가 결혼을 늦게 한 이유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홀어머니와 언니까지 셋이 같이 살면서, 어릴 때부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습니다고 합니다. 정수라 자신의 말로는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고 합니다. 장애인인 언니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는 의무감에, 자신은 만년 결혼을 안 하고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결혼 이후 남편에 대해 "저는 남편이 힘들고 지친 나를 구제해줬다고 말해요. 제가 가수로 데뷔한 뒤 20년 이상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사실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가수 일 외에도 끊임없이 떠도는 루머 때문에 상흔을 받고 고초도 겪었고요. 남편은 그런 저에겐 안식처가 돼줬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장 씨는 한때 중견 규모의 민자역사 운영과 부동산업 등을 주업으로 하는 건설사 대표이사직을 맡았으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음 배서란에 대표이사 사인을 해 5억 5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구속된 바도 있었습니다. 남편 장 씨의 비즈니스실패와 여러 가정적 이유 등으로 2013년 이혼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2015년 복면가왕으로 재조명을 받은 이후 뉴스를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은 그녀에겐 가요톱텐에선 골든컵을 수여해 준 대표곡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흑역사다. 1983년에 '아! 대한민국'으로 KBS, MBC에선 여자 신인 가수상을 받고 스타덤에 올랐지만, '아! 대한민국'이 그 당시에 제2의 애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전두환 정권의 체제 홍보용으로 널리 쓰이면서 어용가수냐는 말을 할 정도로 정수라를 곱게 보지 않았던 눈길도 드물게나마 존재했던 것입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는 경기가 끝나면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이 지겹도록 나왔고, 정수라 자신이 잠실종합운동장에선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당시는 독재정권의 시책에 따라 앨범 마지막 트랙에는 항상 건전가요를 한 곡 이상 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건전가요 정책은 198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신해철은 1996년 윤상과 같이 발매한 '노땐스 골든힛트 일집'에선 맨 마지막 트랙을 "시장에 가면[참 건전한 가요]"이라고 써 놓고 플레이타임을 0분 00초[=즉 실제로는 수록하지 않음]로 적어놓음으로써 그 시절 건전가요 강제수록 정책을 비꼬았습니다.




1988년에 '환희'를 힛트시킨 이후엔 TV활동을 자제하였고 미국 진출을 계획해서 미국으로 떠나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많은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는 오랜 공백기로 인해서 당시 그녀의 나이와 맞물려 재벌 총수의 아들을 몰래 낳아 5백억 원을 받았습니다는 등의 악성 루머에 시달렸고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서 힛트를 못 치다가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으로 가요계가 재편성되면서 주류 가요계에선 밀려났습니다.



후에 뉴스를 통하여서 적극적으로 이를 해명했습니다. 당시는 인터넷 같은 게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유언비어급 헛소문이 많이 돌았습니다. 게다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유명 배우[고두심, 노주현 등]의 사망설이 열흘에선 한 달 넘게 회자되기도 하고, 정말 가관인 것으로는 서태지 여장설에 임신규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대부분 출처없는 소문으로 일부는 연예 기자 등에 의해 악의적으로 부풀려졌습니다. 이런 루머들 때문에 이지연이나 이상은은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면서 아예 가요계를 떠나서 은퇴를 하거나 대중적 관심을 배한정 뮤지션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1992년에 '오늘 같은 밤이면'으로 관심몰이를 하고 있던 박정운과 듀엣으로 잭슨파이브의 'I`ll Be There'를 불러 가창력을 뽐낸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