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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유희열은

1971년 4월 19일 생 올해 나이 48세이며 서울출신입니다. 안테나 뮤직 소속 원맨 밴드 토이의 PD,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디제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 싱어송라이터. 키는 172cm 58kg A향으로 알려져있으며 개그우먼 신보라와 사촌치간으로도 유명하지요

서울대 작곡과 출신으로도 알려진 대표적 브레인 연예인입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으로 현재 대회 심사위원이기도 하며, 수상자 중 가장 성공한 대중 음악인 중 한 명이 된 사람입니다. 감성적인 한국 발라드의 정립자라 불리우는 유재하를 이어받는 탁월한 작곡-작사-연주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발라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매 음반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구성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91 학번인데 2004년 졸업. 중간에 군 복무 기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남 중 둘째.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해 마음고생을 하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습니다. 라디오천국에선 작곡가 롤러코스터의 지누군가 증언한 것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하였고,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무슨날의 음악을 연주했습니다는 것 입니다. 



실제로 유희열 자신 말로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하였고, 어머니는 오토바이 타는 건 말리지 않을테니 앞바퀴만 들지말라에고 했을 정도였습니다고. 예능을 많이 하게 된 이후 마른 몸 때문에 '반건조 차인표' 같은 별명이 생기며 연약한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 젊었을 적 유희열의 인상과 표정, 눈빛 등은 상당히 사나운 느낌입니다.



이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어머니와 형, 그리고 무슨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감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아노는 고등학교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하여 주변의 예측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합니다. '판'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몰랐던 백지 상태에선 1년만에 거둔 성과였습니다니 흠좀무. 합격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다음 날 조간신문에 실렸네요고 합니다.




유희열 자신 말로는 이 때, 블라인드 테스트로 피아노 실기 연주곡을 2곡 연주해야 하는데 한 곡은 바흐의 푸가로 기본기 테스트, 나머지 한 곡은 어려운 곡으로 고전파 이후의 연주 실력을 테스트하는데 쇼팽이나 베토벤 곡이었으면 못 쳤을 거라고 합니다. 당시 유희열은 벨라 바르톡의 곡을 치게되었는데요, 이게 한 음을 한 손으로 손가락을 돌려가며 빠르게 쳐야 해서 엄청 어려운 곡임에도 불구, 자기는 그런 거 못하기 때문에 오락실 독수리 타법에로 두들긴 덕분에 기막히게 연주합니다는 평을 받으면서 합격했습니다고...



물론 이는 유희열의 방영용 자기비하 개그 내지는 겸손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바흐의 푸가[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의 푸가 가운데 하나일 확률이 높다]부터가 피아노 연주와 음악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어야 무리없이 잘 칠 수 있는 작품이라... 개인 스타일과 선호에 따라 각각의 곡을 "얼마나 잘 치는가"는 점차 다를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볼 때 바흐 푸가는 서울대 작곡과 실기 합격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서 베토벤이나 쇼팽 곡은 못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고 보면 됩니다[…]. 게다가 바르톡의 피아노곡은 테크닉 측면으로나 표현 측면으로나 대단히 어려운 편에 속해서, 쇼팽이나 리스트 곡은 웬만큼 치는 예고생이나 음대생들도 난감해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여담으로 고등학교3학년 시절 現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박승동[당시는 경복고 교사]이 담임 선생님이였습니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유희열이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진학을 앞두고 동아기획으로 찾아가 김영 사장에겐 데모테잎을 내고 음악을 하고싶다는 말을 하던 중, 뒤에선 킥킥대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습니다고 합니다. 그 때 김종진, 전태관에겐 처음 들은 얘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꺼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습니다고…  후에 스튜디오에선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걸 할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습니다고 합니다[…].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후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습니다'고…하지만 윤상은 유희열에겐 영입 제안을 했습니다.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은 이미 중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겐 주기도 하였습니다고 합니다. 흑역사인건지 윤상도 유희열 자신도 무슨 가수의 무슨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단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꿈에 잠기어'입니다.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된 걸로 보아서 중학교 때 만든 노래가 이 곡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김형용은 1980년대에 나름 관심이었었던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입니다.


전업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대학 재학 중 김장훈이 이끄는 인디밴드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키보디스트로 가입한 것이였습니다. 첫 대면에 유희열은 김장훈을 미친사람으로 생각했으나[…] 후에 묘한 매력에 이끌려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고 MBC 명랑영웅 '김장훈 편'에선 밝혔습니다. 당시 소개팅 해준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신나게 카페로 갔는데 여대생은 없고 대신 머리 긴 김장훈이 있었습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