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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상레전드이자, 예능새싹으로 떠오르고 잇는 이봉주! 그는

70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선 태어난 그는 올해나이 49세로 학력은 광천고를 나와 서울시립대 무역학 학사출신입니다. [특이하지요 ^^;]

광천고등학교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했습니다.1990년 제71회 전국 체전 준우승에 이어, 같은해 1991년 제72회 전국체전 마라톤 종목에선 우승한 후, 1993년 제74회 전국체전에선도 2시간 10분 27초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2002년 4월 결혼을 하였는데요 황영조 생일때 황영조의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였답니다 :-) 


1991년 대한민국 마라톤의 대부로 알려진 정봉수 감독의 끈질긴 권유로 `코오롱 사단'에 입단한 이봉주는 1992년 1월 도쿄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선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4위로 골인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발전에선 레이스 도중 넘어져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1993년 12월에 열린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대회로 나섰는데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라톤의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안타깝게도 금메달[조시아 투과니]과는 3초 차이였는데요, 이것은 역대 최단 격차였습니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 대회에선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다르게스트인 아프리카 남아공 출신의 조시아 투과니는 진눈깨비가 열리는 일본의 영하 날씨에 적응을 못하여 기권을 하게됩니다. 이후 1998년 4월에 열린 로테르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2시간 7분 44초의 한국 신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 1999년 정봉수 감독과의 갈등과 '코오롱 사단' 의 부당한 처우에 반발하며 탈퇴해 은퇴설까지 나돌았으나. 무소속으로 출천해 2000년 2월 13일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2시간 7분 20초로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에선은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24위로 뒤졌습니다. 이 안타까운 성적은 자신으로서도 가장 아쉬운 때였습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 다시 출천해 준우승를 차지하였고.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에선 한국인으로 51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선 아시안 게임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돼는 부진과 발바닥 부상으로 선수생활에 위기를 맡지만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동아일보 주관]에선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단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은 28위로 뒤졌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나이로 40세가 된 2009년 10월 21일, 제 90회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선 2시간 15분 25초 만에 완주해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며 우승함과 동시에 현역에선 은퇴하였습니다. 만 39세의 나이로 그의 은퇴 경기이자 41번째 완주를 웅장하게 마무리했습니다.



2009년 12월 8일 역도의 장미란 선수와 같이 체육인으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에 훈장인 청룡장을 수상하였습니다



마라토너로서 서른살 이후 찾아온 슬럼프에선 다시 일어났으며, 44번을 도전해 41번을 완주한 엄청난 끈기, 평발+짝발을 극복했습니다는 점 등이 높게 관심되었습니다.



현재 2017년 3월부터 영남고등학교 홍보대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8년 체육대회 때 이봉주를 이겨라라는 종목에선 한 명도 이봉주 선수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